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해마다 광복절이면 알마티시문화 및 휴식 공원은 시내 고려인들로 가득 찬다. 금년에는 이 명절이 알마티시 고려민족중앙회 창립 30주년과 겹쳐서 그 의미가 더 깊었다. 보통 행사는 축사, 공연, 어린이들의 그림그리기 콩쿨로 이어지는데 금년은 전 해들과 차이나는 점이 있었다. 그것은 서울 민족예술 총연합회 손병휘 이사장이 무대에 올라 <나란히 가지 않아도>라는 노래를 자신이 타는 기타반주에 맞추어 불러 관람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우리는 다음날 손병휘 이사장을 <고려일보>신문사에 초대하여 잠간 인터뷰를 할 기회를 얻었다.

-손이사장님, 이번에 알마티 광복절 행사에 오시게 된 동기에 대해 좀 말씀해 주십시오.
-우선 <한인일보> 김상욱 편집국장님의 초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 자신도 오래전부터 알마티에 와서 동포들과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금년은 특히 알마티시고려민족중앙회 창립 30주년도 된다고 하니 축하도 하고 또 광복절에 고려인동포 사회를 격려하기 위해 알마티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세 곳에 계획되었던 공연도 취소하고 이 곳에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원래 전공이 음악이였습니까?
-저는 고려공과대학 산업과를 필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대학은 1986년에 졸업했지만 전공한 직업 (인지니어)에 따라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80년대에 한국에서는 전두환을 반대하는 반항 운동의 파도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저역시 시위운동에 참가하는 과정에 항쟁의 내용을 담은 민중가요의 가사를 쓰고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시위운동자들이 주로 무엇을 반대하고 요구했습니까? 그리고 그 운동이 결실을 가져왔는지요?
-우선 불평등을 없애며 사람들을 고용하면서 사람을 기계의 부속품으로 여기지 말라는 등 인권보호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성권 보호 문제도 있구요. 시위운동의 효과에 대해 말한다면 내가 시위운동에 몸담기 시작한 1986년부터 2019년까지 인권보호 면에서 많은 것을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002년부터 한국에서는 초불을 들고 시위를 하는 초불문화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노래도 부르고 시도 읊고 기타 공연도 합니다. 그래서 시위운동이 문화적으로, 평화롭게 진행됩니다. 초불문화제 진행에는 허가가 필요없습니다. 2016년 10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천 7백만 명이 초불문화제에 참가했습니다. 그 시기에 나는 전쟁과 평화를 테마로 한 앨범 3집 <초불의 바다>를 제작했는데 거기에는 조선전쟁 시기에 간호원이였던 류춘도 시인의 작사로 제가 작곡한 가요도 들어갔습니다. 앨범에 대한 말이 나왔을 때 손이사님은 앨범 5개를 우리에게 선사하였다. 그중에는 <나란히 가지 않아도> (2집), <초불의 바다> (3집), <너에게 가는 길> (5집), <꺾이지 않기 위해> (6집), <추억은 힘> (7집)이 있다.

-민중가요가 사람들의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킵니까?
-TV방송이나 라디오 방송과 달리 저는 사람들이 모인 앞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니 더 쉽게 받아들인다고 봅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과정에 모인 사람들의 반응을 때때로 내가 직접 듣고 목격할 수 있거던요. 제 자랑을 하는 것 같은데 반응이 좋습니다. 반항의 시위는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사장님이 계속 데모에 몸담았을 때 가정의 물질적 형편은?
-다행히도 저의 안해가 좋은 직업을 전공했어요, 약사입니다 – 손병휘 이사장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 다른 나라들에서도 공연을 하셨습니까?
-예, 쿠바, 라틴 아메리카, 독일, 중국 기타 유럽 나라들을 순회공연했습니다.

-알마티에 대한 인상이 어떤지요?
-오늘이 나흘째인데요, 도시가 저의 마음에 듭니다. 첫째로 도로가 편리하게 닦아져 있고 부러울 정도로 나무가 많습니다. 어제 비가 내려서 오늘은 더욱 공기가 신선합니다. 거리에 다니는 카자흐인들의 생김새가 우리와 비슷해서 타국에 온 감이 들지 않습니다. 카자흐 민족요리도 몇가지 맛보았는데 다 맛있더라구요…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창작적 성과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남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