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의 역사와 남북한 협력을 위한 방안

판문점은 한반도 분단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전면적인 남침 공격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예상과는 달리 쉽게 끝나지 않았다. 미국 군대가 주도하는 UN 군대와 중국 공산군의 참전으로 확대일로로 치닫던 전쟁은 1년이 지나자 휴전에 관한 논의가 나타났다. 이때 휴전 회담의 장소로 합의된 곳이 판문점이었다. 따라서 판문점은 남북한 휴전 회담의 목격자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남북한 정책당국자들의 만남의 장소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남북한의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평화를 위한 움직임을 보인 곳도 바로 판문점이다. 이 글에서는 판문점을 역사적으로 조명함과 동시에 남북한 문화교류의 장으로 활용해 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역사: 한반도의 38선 부근에 위치한 판문점은 본래 ‘널문리’라는 조그마한 마을에 불과한 곳이었다. 널문리에는 판자로 만들어진 주막이 있었고 이 집을 중심으로 휴전 회담이 진행되었다. 본래 휴전 회담의 장소는 개성이었지만 개성이 북한군의 관할 영역에 있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남쪽에 위치한 널문리로 이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군대도 참전한 관계로 널문리를 한자로 표기할 필요가 있었고 마침내 ‘판문점’이라는 명칭이 생기게 되었다. ‘판자로 만든 문이 있는 주점’이라는 뜻이다. 판문점 명칭의 유래는 이와 같이 간단하다. 그러나 판문점은 휴전 회담이 열렸던 1951년 10월 15일 이후 정치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매우 긴장된 곳으로 되었다. 휴전 회담이 1953년 7월 27일에 체결됨으로써 한반도에서 전쟁은 종료되었다. 그러나 판문점은 남북한의 군인들이 직접 마주하는 장소이기에 항상 위험스러운 곳이었다. 

결국 1976년 8월 18일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판문점의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미군과 한국군인들이 북한군인들의 갑작스러운 도끼 공격으로 미군 장교 2명이 사망한 것이었다. 당시 남북한의 상황은 1972년의 7·4 남북공동선언으로 평화의 기운이 싹트던 시기였다. 그러나 8·18 사건으로 인하여 남북한 관계는 급랭하게 되었다. 전쟁이 발발할 것과 같은 군사적인 준비가 실행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전쟁 국면에 돌입하지는 않았지만 한반도에서 최고도의 위기가 조성되었다. 이후 판문점의 공동경비구역에서 남북한 군인이 공동으로 근무하는 제도는 폐지되었다. 사진에서 많이 보았던 경계선이 표시되고 남과 북은 그 경계를 기준으로 분리되어 경계 근무를 하게 되었다. 최근 변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한 문제뿐만 아니라 판문점의 의미도 재조정되었다. 2018년 4월 27일의 판문점 선언에서 볼 수 있는 남북한 두 정상의 회담과 평화 의지는 대표적인 화합의 상징이다. 판문점도 8·18 사건 이전처럼 남북한 군인들이 공동으로 근무하는 장소로 복원되었다. 심지어 이전에는 최소한 권총을 휴대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무기를 휴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나아가 판문점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광이 확대, 허용되었다. 원칙적으로 한국인의 경우 북한 영내에 해당하는 지역까지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관광객들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안내를 받으면서 자유롭게 거닐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판문점은 남쪽은 남쪽대로 북쪽은 북쪽대로 관광객들이 통제를 받으면서 제한적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판문점은 대단한 변화를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소로 되고 있다. 남북한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고려인들의 입장에서도 판문점은 필수적인 견학의 장소이다. ‘역사적 조국’의 분단을 바라보는 고려인들은 판문점이 평화와 통일의 구심점이 되기를 바랄 수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고려인들이 반드시 보아야 할 곳이 바로 판문점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불가능 했지만 현재의 한국 정부 하에서 판문점의 남북 지역이 모두 개방된 이상 한번쯤은 가볼 만한 곳으로 된 곳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판문점이 남북한의 문화교류의 장소로 활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교류를 위한 장으로서 활용: 판문점을 문화교류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우선 남북교류를 정치, 경제적인 차원과 달리 독립적인 차원의 문화교류의 개념을 상호 인정해야 한다. 즉 한반도 평화의 정착을 위해 문화교류는 정치 및 경제적 교류와 관계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판문점은 남과 북의 경계선에 놓여 있다. 따라서 공동의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데 현재의 건물이 이용될 수도 있고, 또 다른 건물이 건축될 수 있다.여기에는 체육관과 예술공연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남북한 공동의 스포츠 경기를 위해 판문점에 중형급 체육관을 설치해 보자는 방안이다. 개성은 북한 땅에 있기 때문에 사실상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개성공단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체육관에서 남북한 스포츠 팀이 만나서 경기를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공연장을 마련하여 남북한 예술팀의 공연이 상시적으로 개최되고 남북한 사람들이 관람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예술 공연에는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의 참여가 가능하며 오히려 고려극장이 주도적으로 진행해도 될 것이다.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를 위해 반드시 서울이나 평양을 방문할 필요도, 부담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 판문점이 가지는 장점이다. 

이러한 제안에는 물론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뒤따른다. 과연 문화교류가 정치적인 문제와 결부되지 않고 진행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바로 이점을 양국의 수뇌가 합의하여 명문화해야 한다. 남북한이 모두 평화를 원한다면 문화교류의 지속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정치적 문제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약속이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문화교류는 지속되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구축과 남북한 문화교류의 최적의 공간은 바로 판문점이다.

황 영 삼
-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 통일문화연구원 연구실장
- 알파라비 카자흐국립대학교 한국학과 파견교수 (2005-6)
-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국제관계학과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