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에 스포츠 후보명수가 된 야나

최근 몇십년간에 세계에서는 피겨스케이트가 사랑하는 스포츠 종목들중 하나로 되여 있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어릴 때부터 이 스포츠에 대한 애착심을 배양하려고 애쓴다. 직장을 다니는 부모들은 시간을 쪼개가면서 딸이나 아들을 스포츠학교나 크루쇼크에 데리고 다닌다. 우리는 12세에 이미 스포츠 후보명수가 된 피겨스케이트 선수 야나와 그의 어머니 배 나딸리야와 만났다.우리 앞에 스포츠 후보명수가 된 여아이가 앉아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12세에 스포츠 후보명수라는 것이 우리는 믿기가 어려웠다. 야나는 좀 수집어하는 기색이였지만 피겨스케이트와 연관된 질문에는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우선 어머니에게 묻고 싶은데요 현재 유행인 피겨스케이트를 택한 것이 부모들의 소원이였나요 아니면 야나 자신이 원했던가요?
-우리에게는 어떤 스포츠를 택하는가하는 것은 둘째 문제이고 우선 딸애의 건강에 대한 배려가 앞섰습니다. 아이들이 임의의 스포츠를 하면서 몸을 육체적으로 단련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스포츠 종목을 선택할 때 우리와 야나의 의견도 맞아서 피겨스케이트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 나딸리야가 이야기 한다.야나는 어머니의 손목을 잡고 여섯살 때부터 스포츠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미 스케이트에 익숙하여 손쌀같이 달리는 아이들을 보았을 때 자기도 언제 저렇게 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열심히 배워서 저렇게 타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임의의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피겨스케이트에서도 외상을 피할 수 없다.

-야나, 훈련을 하는 과정에 외상을 입은적이 있니?
-예, 일곱살 때 훈련과정에 넘어져서 뇌진탕으로 얼마간 스케이트를 타지 못했습니다.

-외상을 받은 후에 부모들이 스케이트를 더는 타지 말라고 하지 않더냐? 그리고 네 자신도 얼음위에 다시 서기가 두렵지 않았어?
-아닙니다, 부모들은 내가 이미 피겨스케이트에 익숙해지는 것을 보았고 혹시 부모들이 금지했어도 내가 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미 거의 일년을 탔으니 피겨스케이트에 완전히 끌려들어갔거던요…
날이 갈수록 야나의 스포츠 능력도 차츰 늘어갔다. 첫 2년간은 따마라 뻬뜨로브나가 훈련시켰고 그후 오늘날까지 트레이너 아세마 로베르또브나 카사노바가 훈련시키고 있다고 한다. 주로 빙상경기장 <올림픽>에서 훈련을 하는데 하루에 3시간 즉 2시간은 스케이트를 타고 1시간은 육체적 단련을 한다. 야나가 피겨스케이트를 하기 시작한지 거의 8년이 되는데 그 동안에 수많은 경기에 참가했다. 처음에는 시 경기, 다음은 주, 공화국 경기에 참가했다. 적어도 년 8번의 피겨스케이트 경기에 참가한다고 한다. 2년전에 카자흐스탄공화국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2위를 차지했다. 야나는 우승컵 쟁탈전에 여러 번 참가하여 우승컵을 받았고 메달만해고 19개가 된다고 한다. 

-야나, 공연프로그램은 트레이너가 작성하는거지?
-예, 트레이너가 작성하고요 거기에 따라 의상을 깁습니다. 그런데 경기에서 공연할 때에 꼭 준수해야 할 시간이 있습니다. 즉 독단적 프로그램 실행과정에는 5분, 짤막한 프로그램은 3분을 타야 합니다. 이것은 피겨스케이트 공연시의 규칙입니다.

-말이 난김에 트레이너에 대해 몇마디 해 주렴…
-아세마 로베르또브나는  첫 트레이너와 달리 엄격하고 요구성이 강한 선생입니다. 그러니 선수들도 자연히 자신에 대한 요구성과 책임성을 더 높이게 됩니다. 그러는 한편 트레이너는 선수들을 칭찬해 주고 아껴주기도 합니다.    

-나딸리야, 야나가 공연할 때에 입는 의상은 누가 깁습니까?
-나타샤라는 재봉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다니면서 천을 고르고 옷을 장식하는 인조 보석이나 진주 기타 장식감을 구매합니다. 디자인도 우리가 셋이서 구상합니다. 야나의 의견도 꼭 고려해야 하니까요…- 야나의 엄마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야나, 가장 마음에 드는 의상이 어떤 것이지?
-프랑스 음악에 맞춰 공연할 때 입은 핑크색 드레이스와 스페인 춤을 출 때 입었던 검은 색과 붉은 색 천을 배합하여 지은 옷입니다. 

-야나, 사진을 보니 정 제니스, 알렉세이 야구진이 너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던데…
-정 제니스는 우리가 훈련하는 <올림픽> 빙상경기장에 와서 마스터-클래스를 종종 하면서 피겨스케이트 선수들에게 자기의 경험을 나누어 주었고 유익힌 충고도 많이 주었습니다. 제니스가 비참하게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억울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우리 스포츠학교 학생들이 다 장례식에 갔었습니다. 제니스는 저에게 있어서 우상이였습니다. 나는 그를 본받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인터뷰중에 잠간 시간을 내여 야나의 트레이너 아세마 로베르또브나 카사노바와 통화를 하였다.

-야나는 규칙을 철저히 지키고 무엇이라도 더 배우려는 욕망이 큽니다. 스포츠에는 승리도 있고 실패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승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고 해서 낙심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스포츠맨에게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품성이라고 봅니다. 한가지 보태고 싶은 것은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곁을 일찍 떠난 정 제니스 선수가 카자흐스탄의 피겨스케이트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입니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좀 시간만 나면 우리 <올림픽>빙상경기장에 와서 마스터-클래스를 시위하였습니다. 때로는 친구 알렉세이 야구진과 함께 와서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제니스는 재정형편이 허락지 않은 가정에서는 부모들이 자식들을 데리고 다른 나라에 가서 경험을 얻도록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이해하기에 카자흐스탄에 올 때면 꼭 마스터-클래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선수들에게 이것이 큰 도움으로 되었습니다.다음 우리는 야나의 어머니에게 또 한가지 질문을 하였다:   

-나딸리야, 당신네 가정을 국제주의 가정이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러시아인이고 맏딸의 남편인 사위가 위구르인이라지요…그러면 명절상에는 어떤 민족음식이 오르지요?
-우리 가정이 세 민족으로 이루어졌지만 모두가 다 타민족 요리를 서로 좋아해서 다행입니다. 그러니 명절 상에도 여러 민족 요리가 오릅니다. 그리고 아시다싶이 고려인의 요리를 모든 민족들이 다 좋아하지 않습니까…

-야나, 넌 날마다 피겨스케이트 훈련도 하고 힙-호프 춤도 추려 다니고 또 인터-프레스에서 영어도 배운다는데 그것이 다 학업에 지장이 되지 않니?
-아닙니다, 나의 마음에 드는 것을 하니 시간을 잘 조절하면 지장이 되지 않습니다. 최우등생은 아니지만 우등 성적으로 공부합니다.
-곧 국제아동 보호절인데 넌 이 날을 어떻게 보내지?
-통례로 학교마다 학생들이 모여서 광장에 나가서 춤도 추고 여러가지 유희도 놀면서 재미있게 보냅니다. 이것이 전통으로 되었습니다.
-야나, 스포츠 분야에서 네가 세운 목적은?
-스포츠명수가 되려는 것입니다. 
-12세에 스포츠 후보명수가 된 넌 목적지향성이 있고 완강성이 강한 아이야, 그러니 세운 목적을 꼭 달성하리라고 믿는다. 성공을 바란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