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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준 – 간부 관리인, 부상

리히준은 아무르강 상류 사마르까 (조선어로는 삼만리) 강연안에 1871년에 창시된 블로고슬로웬노예 촌에서 1906년 1월 13일에 태여났다. 연해주에서 이주해 온 한인 가족 103 가호가 새 촌의 첫 주민들로 되었다. 한인들이 러시아정교에 들어 가 <축복>을 받은 후에 농촌을 개칭했다. 리히준이 태여날 무렵에 블라고슬로웬노예 촌에는 근 2천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것은 러시아정교의 세례를 받은 한인 거의 전부이다. 때문에 리히준에게는 와실리라는 러시아 이름이 있었고 부칭은 찌모페예비치였다. 이것은 두 개의 교회와 세 개의 학교가 있는 큰 촌이였다. 1919년에 블라고웨센스크로 이주하기 전에 그중 한 학교에서 와실리가 공부하였다. 블라고웨센스크에서 그는 중학교와 김나시야를 필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기에 와실리는 하바롭스크에 가서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부득이 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