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생을 기다림속에서

안나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일찍 일어났다. 함대에서 복무하는 남편 해군대령을 거의 반년동안 보지 못했다. 어제 사령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 11시까지 부두에 나가야 하니 그렇게 준비하십시오…>

좀 엄격한 목소리였으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반가운 소식이였다. 안나는 원정을 떠나있는 남편이 돌아올 무렵이 될 때마다 이런 소식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는 아들애를 깨우고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다음 집에서 나갈 차비를 하였다. 보통때보다 일찍 깨워서 아들애가 좀 응석을 부리기는 했지만 <아빠를 맞이하러 간다>는 엄마의 말에 응석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장교의 안해들과 자식들을 실은 버스는 부두를 향해 블라디보스톡의 거리를 가볍게 달렸다. 안나 뻬뜨로브나가 그리운 남편을 맞이하기 위해 이 거리로 부두를 향해 달린것이 처음이 아니지만 갈 때마다 심장이 유달리 고동친다…해군장교 안해의 생활은 쉽지 않다. 반생을 기다림속에서 보낸다.

안나는 장래 남편 박 꼰쓰딴찐을 따지끼스탄의 두산베에서 만났다. 그 때 꼬쓰쨔는 친구의 아들의 돌잔치에 초대되어 두산베에 왔었다. 젊은이들은 서로 마음에 들었다. 결단성 있는 청년은 사랑의 고백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그들은 부부가 되어 안나는 남편을 따라 먼 원동의 블라디보스톡으로 갔다. 이 때에 이르러 꼰쓰딴찐은 레닌그라드 뽀뽀브명칭 라디오 전기기술 고등 해군사관 학교를 필하고 블라디보스톡 함대로 파견되었었다. 크슬오르다 주 야늬꾸르간에서 태여난 안나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 전화수 야간 강습을 끝내고 체신국에서 전화교환수로 일하는 중이었다. 

-남편의 성격이 결단성이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외할아버지의 성격을 닮은것 같애요 – 안나 뻬뜨로브나가 이야기 한다 – 아버지가 후에 들려준바에 의하면 할아버지에게 형이 둘이 있었답니다. 삼형제 중에서도 할아버지는 정력적이고 불공평성을 보고는 묵과하지 못하는 성격이였답니다. 그래서 일제의 박해를 피해 러시아 원동으로 넘어와 이만에서 살아온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런데 37년도에 고려인들을 강제이주시킬 수 있다는 정보를 할아버지가 미리 알게 되자 강이 얼었을 때 말썰매를 타고 조선으로 도주하려는 대담한 생각을 가지고 식구들을 태우고 떠났습니다. 할아버지에게 총이 있었는데 경찰들이 말썰매를 멈추고 수색을 하기 시작하자 수레바닥의 틈사이로 총을 밀어넣어 눈에 꼽혀 보이지 않도록 했답니다. 만일 경찰이 총을 발견했더라면 온 식구가 다 총살당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더랍니다.

그 후에 할아버지는 그 때 한반도로 돌아가지 못한 것이 한편으로는 더 좋았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조국으로 돌아갔으면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 안나 뻬뜨로브나는 4년전에 남편과 영결했다. 그 허전한 마음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는 그는 <비단길>협주단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안나 뻬뜨로브나, 그런데 <가르모니야>무용단은 어떻게 생겼나요?

-우리가 노래 연습을 하던 중에 웨라 이와노브나가 말하기를 <노래를 부르면서 음악에 맞추어 손이나 어깨로 좀 동작도 해 보자>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차츰차츰 동작을 하다보니 무용단을 창단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결국 카자흐스탄공화국 인민배우 김 림마 이와노브나에게 춤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림마 이와노브나의 수고가 많습니다. 우리가 다 나이가 있어서 한번 들은 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지요…림마 이와노브나는 인내성을 내어 다시 가르쳐 줍니다.

-안나 뻬뜨로브나, 당신이 무용단 단장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단장은 어떤 임무를 실행합니까?

-규율을 지키도록 하고요 행사가 있으면 공연일정을 제 때에 알려주어야 하고 무용의상은 다 제가 책임집니다. 우리가 여러 행사에서 공연하거던요. 다른 도시에 순회공연도 나갑니다. 예를 들어 딸듸 꼬르간, <달니 워스또크> 솝호스, 심켄트, 빠흐따 아랄, 크슬오르다에 다녀왔습니다. 우리가 국제콩쿨에 참가하여 증서도 받고 그란-프리 (대상)도 받았습니다. 이 콩쿨에 러시아, 우스베키스탄, 터키 예술단들도 참가했습니다.

<가르모니야>무용단은 주로 한국무용에 중점을 둔다고 한다. 그들의 공연종목에는 <비둘가>, <부채춤>이 있고 현재 새 춤 <에쮸드>를 배우는 중이다.

-자식들은 무엇을 전공했습니?

-아들은 공과대학을 필하고 주도적 인지니어로 독일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가정이 있고 손군이 셋입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 두달동안 아들집에 다녀왔습니다.  딸애는 비즈니스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_안나 뻬뜨로브나, 얼마전에 70고개를 넘어섰는데 자신을 그 나이로 느낍니까?
-솔직히 말해서 70세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항상 젊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마 노래와 춤이 도움이 되는가봐요…

-장래 소원이 있으시다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시고 손자들이 있는 할머니로서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지 말것을 원하며 금년 1월에 우리 공화국에 있던 그런 무서운 사변이 절대 반복되지 말았으면 합니다.  

- 안나 뻬뜨로브나,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의 길을 되돌아 보면서 가장 행복했던 어떤 순간이 잠간이라도 되돌아왔으면 합니까?

-부모가 살아계시고 믿음직한 남편이 곁에 있던 순간이 몹시 그립습니다… 

-감사합니다.

남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