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얼 살리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시는 이재완 회장님

알마티는 물론 카자흐스탄의 여러 지역에서는 평통자문회 전 카자흐스탄지사장의 직을 여러해동안 맡아 사업하였던 이재완 회장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이회장님을 고려인들 다수가 <게녜랄> (장군님)이라고 자주 부른다. 이재완 회장님은 고려인자녀 한명이라도 한국으로 유학을 더 보내기 위해, 장학금을 한명이라도 더 받게하려고 모든 힘을 다 경주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고려인들의 한글교육, 건강증진 그리고 고려인들의 첫 정착지 - 바스토베에 우호공원 조성 등 좋은 사업을 많이 하셨고 앞으로도 계속할 계획이다. 우리는 음력설 전야에 이재완회장님과 만나 인터뷰를 하였다.  

-카자흐스탄에 오시게 된 동기는?

- 2009년 2월 36년간의 군 생활 퇴역 후 육군본부에서 정책위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3월경에 군인공제회로부터 카자흐스탄에서 근무할 의향이 있느냐는 제의를 받아 그때 세계지도를 보고 처음으로 카자흐스탄이란 나라를 알게 되었습니다. 

- 퇴역 후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이야기 했더니 아내도 좋다고 하여 수락하였습니다. 아마 군인공제회에서 제가 1996년 8월–1998년 7월까지 2년간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총참모대학에서 수학한 것을 알고 제의를 했던 것 같습니다. 

-군 생활을 36년 하셨다는데 군대 생활을 한 원인은?

- 1970년 당시 한국경제는 어려웠고 저의 집안 사정 또한 여의치 못하여 학비에 부담이 많았던 시절 이였습니다.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 드리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고, 덕분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으며 이런 연유로 군 자녀를 위해 설립한 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여 군인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 솔직히 군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했어요. 그 당시만 해도 의사, 검사, 판사 중 하나가 되는 것이 직업의 우선순위 1번이였고, 부모님들의 최고 희망 사항 이였지요.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고, 특히 어머니는 당연히 3가지 직업 중 하나를 할 것이라고 믿고 계셨죠. 

-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육사에 갔으니 이곳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을 처음부터 가졌답니다. 이러한 부담감이 여러 어려움과 많은 갈등을 견딜 수 있게 만들었고, 성공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 4년간의 육사 교육을 통해 국가와 민족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장교가 되어서는 국가와 군의 미래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장군이 되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매사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런 목표를 갖고 노력한 결과 대령까지는 1차로 진급하였습니다. 

- 대령으로 진급되어 처음으로 국방부에 근무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유능한 선배 장군, 장교들을 보면서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를 만회하겠다는 생각으로 러시아 총참모대학에 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 왜 하필 러시아 총참모대학을 택하셨는지요?

- 어쩔 수 없는 선택 이였어요. 한국군은 미국, 영국 등 서방국가의 군사사상을 기초로 육성된 군이기에 서방국가와는 군사교육을 교류하는 시스템이 있었으나, 러시아군 하고는 소련이 해체되고 한국과 국교가 수립된 1991년 이후부터 군사적인 교류가 이루어졌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초급장교들은 러시아 교육 희망자가 있었으나, 장군진급을 앞둔 고급장교들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원했더니 바로 선발이 되어 가게 되었지요. 

- 그런데 하루는 군 선배가 불러서 갔더니 “거기 가면 너 장군 진급이 안 되는데?” 하면서 걱정 어린 눈으로 저를 보더라고요. 이런 과정을 거쳐 러시아 총참모대학에 가게 되었으며, 2년간 교육을 통해 러시아 군과 군사학에 대해 알게 되었고, 북한군 장교들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 교육수료 후 한국으로 돌아와 연대장과 군단급 참모직위를 거쳤는데 선배님의 말씀처럼 첫해 장군진급이 안되었어요. 다른 직책에서 1년간 고생을 한 후에 장군이 되었어요. 선배님 말씀이 맞았던 것이죠. 

- 그런데 그 교육으로 인해 11년 후에 제가 카자흐스탄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미래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자기 삶은 스스로 개척해 나간다는 말이 있는 것 같아요. 

- 카자흐스탄에 오신 후 고려인에 대한 첫인상은?

- 고려인에 대해서는 카자흐스탄에 오기 전에 처음으로 들었어요. 연해주에 살 던 조선사람들이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고 그 이후 고려인, 고려사람으로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2009년 7월 카자흐스탄에 도착하여 군인공제회와 합작회사인 USKO 물류회사에 근무하면서 직원 중에 고려인을 처음 만났는데 한국말은 못하지만 성실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국을 역사적인 조국이라 부르며 자신은 카자흐스탄 국민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카자흐인들과는 다르게 부지런하고 책임감 있으며,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사는 모습이 자랑스러웠습니다. 

-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회장을 오래 하셨는데 주요 활동사항에 대해 말씀 해주세요?

- 고려인에 대해서 깊게 알게 된 것은 2011년 7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카자흐스탄 지회장으로 임명된 후 자문위원이였던 박이반, 신브로니슬라브, 김게르만과 같은 고려인 원로학자와 사업가들을 알고 나서입니다. 

- 민주평통 사업을 추진하면서 고려인들과 자주 접촉하게 되었고, 특히 김게르만 교수를 통해 강제이주 후 고려인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와 한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알고 나서는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 민주평통의 활동은 고려인과 한국교민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고려인의 삶을 한국사회에 알리는데 중점을 두고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 2013년 카자흐스탄 고려인 자문위원들의 노력으로 카자흐스탄 지회가 중앙아시아협의회로 승격되면서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타지기스탄까지 포함하여 ‘민족화합과 통일을 위한 한민족 축제’를 알마티에서 개최하고, 고려인 자녀들의 한국 고등학교 입학 및 장학사업 등을 추진하였습니다. 전라남도 고등학교에 입학한 35명의 학생 중 대학에 진학하여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 한반도 통일에 고려인들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김게르만 교수가 고려일보에 “한반도 통일의 불가피성” 이란 제목으로 4년간 기고를 게재하여 고려인들에게 한반도 분단의 역사를 알리고, 한반도의 통일에 고려인들이 참여해야 하는 당위성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한반도가 통일이 될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 중앙아시아협의회장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16년 10월 민주평통 중앙아시아협의회 자문위원들과 함께 금강산이 보이는 군사분계선을 방문하여 북한군 초소에서 흘러나오는 선전방송을 들었던 것이며, 한국군 부대에서 군인들과 식사를 함께하면서 군 생활상을 직접 체험하면서 북한군과 대치되어 있는 한국의 안보상황을 피부로 느끼게 한 것입니다. 

- 다른 하나는 고려인협회장(오가이 세르게이)과 함께 2017년 10월부터 북한의 학자 및 공연단 초청을 은밀히 추진하였는데 2018년 5월 알파라비 국립대학교에서 개최된 ‘한반도 국제학술 포럼’과 ‘한민족 축제’에 북한의 학자 및 공연단이 참가한 것입니다. 오는 당일 날 까지 누가? 몇 명이 오는지 몰랐어요. 얼마나 답답했는지..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 행사는 무사히 마쳤지만 아쉬움이 많았고, 북한의 독재체제가 길어질수록 민족의 이질감이 더 커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고려인들은 북한 공연단을 환대하면서 그들의 처지를 저보다는 좀 더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향후 한반도 통일과정 중에 고려인의 중간 역할이 필요함을 재인식하였습니다. 

- 민주평통 회장을 떠난 후에도 고려인협회 회장 고문으로서 고려인들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셨다는데 무슨 활동을 하시고 계시는지요?

- 제가 2011년부터 2019년까지 8년 동안 회장을 하면서 많은 사업을 추진하였고, 성과도 있었으나 고려인과 관련해서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래서 민주평통 중앙아시아협의회 회장을 그만 두고, 한국의 통일문화연구원과 현대병원과 협력하여 고려인을 위한 사업에 전념하기로 한 것입니다.

-한국의 통일문화연구원과 현대병원, 고려인협회 3자간 MOU를 체결한 후 먼저 고려인을 대상으로 한글교육과 전통문화교육을 시작하였고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현대병원에서는 딸듸꼬르간 지역에서 2년간 무료의료봉사 활동을 하였고, 현재는 코로나상황으로 중단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의사 및 간호사 연수는 계속되어 올해에도 2차에 걸쳐 8명이 연수를 실시하였습니다. 무료 의료봉사와 의사 및 간호사 연수는 코로나 상황이 완화되면 다시 추진할 예정입니다. 

-고려인의 꿈 재단과 연계하여 매년 20명의 장학생을 선발하여 장학금(1인 500불)을 주고 있으며, 작년에는 고려인협회와 공동으로 30명의 장학생을 선발하여 수여하는 행사를 하였습니다. 올해에는 선발인원을 확대할 예정이며 3월 중순에 장학생 선발 공고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바스토베 고려인 최초정착지에 한카 우호공원을 조성하는 사업을 카라탈군과 협조하여 추진 중에 있습니다. 2019년에는 고려인협회에서 건립한 감사비 주변을 새롭게 단장하면서 광장을 조성하였으며, 고려인 추모비를 건립하고 울타리 및 배수로를 설치하였습니다. 2021년에는 한․카 우호기념비와 카작 조형물을 건립하였습니다.

-올해는 고려인 항일 독립운동가 15명을 추모하는 추모비를 건립하고, 유르타, 도로 안내판 등을 설치할 계획입니다. 내년에는 파고라, 주차장,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설치할 예정입니다.

-또한 카라탈 군에서 새롭게 조성한 우쉬토베 역 광장에는 고려인 최초 정착지임을 알리는 기념석과 역사관을 설치하여 우쉬토베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1937년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역사를 알 수 있는 홍보장소로 만들 계획입니다.

-카자흐스탄에 오신지 13년째 이신데 가족에 대해서? 

- 아들, 며느리, 딸, 사위하고 손자 3명, 손녀 2명이 있습니다. 아내(이선자)와 알마티에서 함께 거주하고 있고, 아들은 용인, 딸은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1년에 2-3번 정도 다녀오는데 코로나 상황으로 자주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 2019년 8월에는 가족 모두가 알마티에 와서 침불락, 차린계곡, 이식쿨 등을 관광하면서 일주일간 머물다 돌아갔는데 모두들 카자흐스탄이 마음에 들었다면서 또 다시 오고 싶어 합니다.

- 다음에 가족들이 방문하면 바스토베 우호공원에 데리고 가서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의 역사를 설명해주고 참배시킬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간 제가 알마티에서 하였던 일들을 보여주면서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하려고 합니다. 

-고려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 올해가 고려인이 카자흐스탄으로 이주된 지 8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다민족 국가인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 국민으로 자리를 잡았고, 위상도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고려인들이 카자흐스탄 독립 후 국가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또한 올해는 카자흐스탄과 대한민국 간 국교수립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과 대한민국 양 국가가 좋은 협력관계로 발전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역할이 소수민족의 굴레를 벗어나서 카자흐스탄 국민으로서 위상을 더욱 공고히 만들어 줄 것입니다. 

- 한국정부는 해외동포를 재외국민으로 생각하며 해외동포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재외국민으로서 권리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과 카자흐스탄 국가간 좋은 협력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사항과 한민족의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에 필요한 사항을 한국정부에 요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고려인협회가 이러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며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께도 2022년이 좋은 일만 있는 해로, 소망이 이루어지는 해로 되며 회장님댁네 만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남경자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