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리 마르크

(왼쪽으로부터) 작가 김 아나똘리, 사진작가 리 마르크, 사진작가 안 윅또르   

미술가에 대한 이야기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내가 보건대는 이 질문에 한 마디로 답을 줄 수 없다. 타스켄트 사진작가 리 마르크의 창작에 대한 의견도 여러가지이다. 그런즉 이것은 사람들이 그의 창작에 무관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것이 창작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처음에 리 마르크가 찍은 초상화 사진 전시회를 2012년에 관람했다. 작품이 열개였지만 사진마다가 방문객들을 깊이 감동시켰다. 내가 거의 반생을 기자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진전시회를 보았지만 리 마르크의 사진전시회를 보는 순간 받은 그런 충동은 받아본적이 없었다.  그의 작품의 주인공은 우리의 현대인이다 – 작가, 시인, 화가, 작곡가,  가수… 그가 촬영한 사진을 내가 작품이라고 한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다. 초상화마다가 오직  특이한 느낌을 가진 재능있는 사진작가가 창작해낸 서사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의 창작품마다가 얼마나 신중히, 세밀히 구상한 것인지 사진들을 보면서 묵묵히 마음속으로 감탄하면서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이 사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진마다가 서사시나 다름없다>고 한 저명한 고전작가의 말을 되풀이하고 싶다…

-사진전시회로 가나요, 앉으세요…태워드릴테니까 – 지나가는 외제차의 문이 열리더니 운전수가 말했다.
나는 그의 차에 앉아 가면서 물어보았다:

-안 윅또르의 사진전시회에 가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렸나요?

-이 거주구에 고려인들이 살지 않거던요, 그런데 당신이 아주 바삐 걷는 것을 보고 어디로 서둘러 가는가를 알아차리기가 어렵지 않았어요…

이렇게 행운이 좋아 나는 타스켄트의 내가 알지 못하는 시구에서 열린 안 윅또르의 사진전시회에 늦지 않고 제때에 왔다. 후에 알고보니 그 날 나를 태워다 준 사람이 다름아닌 사진작가 리 마르크였다…

그후에 우리는 마르크의 창작품 전시회에서 여러번 만났다. 작가, 배우, 화가 기타 직업 대표들과의 창작야회에서 찍은 사진들은 출판물과 홈페이지에도 자주 올랐다. 그당시 마르크에게는 칠란사르시구에 지어 사진작업실도 있었다. 그는 거기에서 자기의 프로젝트를 실천하였다. 마르크는 2014년에 러시아에의 한인들의 자원적 이주 150주년에 즈음한 <러시아어로 구사하는 고려인들>이란 국제콩쿨에 참가했는데 <사람들>이란 종목에서 콩쿨 수상자로 되었다. 우연인가? 물론 아니다. 그것은 유능한 콩쿨심사위원들이 타스켄트 사진작가의 놀라운 창작적 독특성을 일치하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에 마르크가 그의 재능 숭배자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선 사람들이 원하는 <초상화>창작에로 그를 되돌리기 위해 마르크와 접촉하려고 했는데 다 허사였다. 아마 일상생활의 이모저모, 절박한 후생 문제들이 마르크로 하여금 자기의 선택을 하게 한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그가 일생을 몸담을 일은 스폰서의 상시적 도움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재능있는 사진작가가 자기의 재능을 활짝 꽃피우지 못하는 것이 유감스럽다. 그런데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 혹시 시간이 좀 지나면 우리가 사진작가 리 마르크의 훌륭한 창작품을 또다시 보면서 기뻐할 수 있을넌지? 이것을 몹시 믿고 싶다!

리 블라지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