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으며

이제 일주일 앞으로 추석이 다가왔다.

이곳에서 오래 살다 보니 “추석”하면 “한인 한마음 체육대회”가 더 떠올려지는데 고려일보 남기자님께서 한국의 추석에 대한 회상기를 보내 달라고 하신다.

작년 모처럼 코로나로 인해 8월에 한국에 들어가 3달정도 있으면서 추석을 보내고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20여년만에 추석을 부모님과 함께 보낸 것이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모일레야 모일수도 없었으니 뭐 딱히 추석을 세고 왔다고 말할 수도 없겠다. 그래도 추석이면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 떠들고 운동회도 하고 한판 신명 나게 놀아야 되었건만 모처럼 고국에서 보낸 추석을 달랑 조상님께 직접 문안인사 드린 게 전부였으니…

내가 기억하는 추석은 남들과는 좀 달랐다. 어머님께서 시골 장에서 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명절 전날은 항상 시장에서 어머님을 도와 드려야 했다. 어머님이 장사하시는 곳은 3일과 8일에 장이 서는 곳이다. 일명 3.8장! 그런데 명절이 그 가운데 끼게 되면 “위문 장”이라 하여 3일이나 8일이 아니어도 새끼장이 섰다. 명절 전 열린 장에서 차례상에 올릴 음식들을 장만해야 했지만 그때 잊고 사지 못했거나 형편상 제때 시장을 보지 못한 가정들도 많았기에 이전 장날에서 며칠이 지났건 명절 전날 새끼장이 서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루 고단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셔서 다시 음식 장만을 하시는 어머님은 정말 초인이셨다. 다른 집들은 아침부터 전을 붙이고 송편을 빚고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했는데 우리집은 저녁이 되어서야 그 일이 시작되었다. 비로서 기름이 튀겨지고 전을 붙이면 그 고소한 기름냄새에서 추석이 성큼 다가왔었다. 그렇게 저녁내 조상에 올릴 음식을 준비하고 추석이 되면 새벽에 일어나 차례상을 준비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어동육서”… 차례상에 올려야 되는 규칙들이었다.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 대추, 밤, 배, 감의 순서로 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 등등 이런 순서대로 차례상을 차리고 조상들에게 한해 풍년됨을 감사하며 차례를 모신 후 성묘를 다녀왔다. 그리고 풍성한 음식속에 친지 이웃들과 정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어른들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고 했듯이 모처럼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던 날이었던 거 같다. 성인이 되고는 부모님과 함께한 추석이 없었다는 게 새삼 놀랍기는 하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가정을 꾸리고 친구를 사귀고 추석에 함께 모여 체육대회도 하며 함께 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 느끼지 못했던 듯하다.
정말 오랜만에 기억속에서 잊혀 가고 있던 고국에서의 추석에 대한 추억을 끄집어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추석이건만 코로나로 인해 마냥 추석이 즐거워야 할 추석이 되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
 

골든투어 카자흐스탄
                                                                   대표 진 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