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시인 리 왜체슬라브

금년 7월이면 리 왜체슬라브 보리소비치의 나이가 77세가 된다. 우리가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 왜체슬라브 보리소비치는 < 제 나이가 곧 77세가 된다는 말이요, 이해하시나요, 77세란 말입니다!> 라고 부르짖었었다. 그의 이 부르짖음에는 감탄도 있었고 놀라움도 들렸다. 또 한편으로는 세월이 그렇게 빨리 흘러 어느새 77세가 되었는가하는 아쉬움도 섞여 있었다…

…많은 동년배들과 마찬가지로 태여나 자라 공부하였다. 식품과 공업품이 부족했을 때 소세지나 구두를 사려고 긴 차례를 서기도 했다. 그리고 물론 책을 사려고 애를 썼다. 책은 슬라바에게 있어서 두번째 세계로 되었다. 이 세계가 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무더운 우스베키스탄의 별하늘 아래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사랑을 속삭이였던 밤도 있었다. 사랑의 밤은 젊은 부부에게 딸과 아들을 안겨주었다. 그의 창작에 고무감을 준 아름다운 저녁 노을과 새벽도 있었다. 그의 시는 CIS 고려인 문학의 황금폰드에 들어갔다.

…만남과 이별도 있었고 실망과 기쁨도 있었다. 이렇게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지나 몇십년이 흘러갔다. 그래서 하루는 세월이 문을 두드렸다: <슬라바 용서해, 왜체슬라브 보리소비치, 죄송해요, 당신의 나이가 칠십칠세입니다>.

손군들도 다 자라 딸 마리나의 맏아들 왈레리는 콜레지를 졸업했다. 아들 리하르드의 17세된 아들 아르쬼은 먼 미국에서 할아버지에게 시를 보내왔다…시는 영어로 쓴 것이었다. 아마도 영어가 그 애에게 모국어로 될것 같다고 할어버지가 말한다.

- <시의 내용은 무엇인가?> - 고 손자더러 물어보았더니 <친구들과 우정에 대한 것이예요>라고 손자가 대답했다고 왜체슬라브 보리소비치가 말하였다. 

- 한번은 푸스킨의 탄생일에 즈음한 문학야회에서 손자 막심 (딸애의 작은 아들)이 사람들이 많이 모인 가운데 시를 읊었다니까요, 아마도 유전인가봐요 – 왜체슬라브 보리소비치가 손자에 대한 긍지감을 품고 이야기 한다.
자식들이 벌써 다 성인이 되고 그들을 뒤이어 손군들이 자랐다. 그런데 왜체슬라브는 어른이 되려고 서둘지 않는것 같다. 또 그가 어른으로 될것 같지 않다. 여전히 어린이와 같이 순박하며 생을 보고 감탄하며 아무리 밝은 사상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더군다나 순간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길을 막아설줄 모른다.
그런데 제기랄, 샌 머리가 나이를 알려준단 말이거던…우리는 시인더러 물어보았다.

- 자신을 77세된 사람으로 느끼나요?

- 믿지 않아요, 믿을 수 없어요 – 그가 대답한다 – 그런데 아직은 연회에서 50그람을 충분히 마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즉 아직도 힘이 있는거지요…

- 시문학 활동이 어떻게 시작되었던가요? 

- 아마도 <삐오녜르 워스또까>란 잡지에 나의 첫 시를 게재했을 때부터 시작된것 같애요. 가억나세요, 이런 아동잡지가 있었던것을? 그때 내가 9학년에서 공부했지요.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자연과 산봉우리에 대한 감탄인것 같애요. 온 학교가 나의 시에 대해 말했어요. 그리고 러시아어 및 문학 교원 니꼴라이 이와노비치 꾸크샤는 동창생들 앞에서 나의 시를 읊었단 말입니다. 물론 나의 어깨가 으쓱했지요…이런 행운은 나의 창작을 자극했고 많은 정도 나의 미래를 확정했습니다.
시에 대한 감정은 저에게 어릴 때부터 있었는데 아마 어머니에 의해 그 감정이 커간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조선민요를 잘 불렀습니다. 지어 타스켄트주 고려극장의 연극 <심청전>에서 부르는 아리아도 불렀어요. 학창시절때 나의 역사교사였던 박 표도르 필리뽀비치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 분은 나에게 유럽문학에로의 창을 열어주었습니다. 강 블라지미르 필리뽀비치가 우리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그 분이 몇년후에 니사미명칭 타스켄트 사범대학 조선어과 창시자들중 하나로 되었습니다. 4학년 때 학교에서 안나 안드레에브나 교사가 세르게이 미할꼬브의 작품을 무대화한 연극에서 내가 역도 놀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가정과 학교에서 모든 분위기가 내가 시인으로서 성장하는데 협조했습니다.
리 왜체슬라브 보리소비치는 계속하여 모스크바에서 공부하던 시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나는 레닌명칭 모스크바사범대학에 입학했는데 그 대학에서 공부하던 시기를 나의 생활에서 가장 밝은 나날로 회상합니다.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그 시기는 <흐루쇼브에 의해 얼음이 풀리는 시기>라서 시인들과 작가들이 자유롭게 창작을 했습니다. 우리 대학생들이 중앙 문학가회관, 정치기술 박물관을 자주 다녔는데 거기에서 벨라 아흐마둘리나, 불라트 오꾸자와, 안드레이 워스녜센쓰기, 예브게니 옙뚜센고, 알렉산드르 메지로브 등 시인들이 자기의 작품을 가지고 출연했습니다. 시간이 허용하는 대로 우리는 소극장과 모스크바아카데미예술극장에 연극을 구경하러 다녔고 음악대학도 다녔습니다. 인기있는 배우들인 미하일 울리야노브, 와실리 라노워이가 우리 대학에 왔었고 엘리나 븨스트리쯔까야와 만났으며 레오니드 레오노브와 악수도 했습니다.

대학을 필하고 집에 돌아온후 나는 교사로 일하면서 <삐오녜르 워스또까>잡지에 기사도 썼습니다. 한번은 상기 신문사 직원 빠웰 슈파에게서 타스켄트에 왔다가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는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할 것을 제의했습니다. 이렇게 나의 기자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그 후에 즉 1978년에 공화국간 공동신문 <레닌기치> (현재 <고려일보>) 주재기자의 직책에 나를 초대하였습니다. 나는 이 신문사 주재기자로 근 20년을 근무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근무하던지간에 시는 계속 썼습니다. 이제는 시를 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시는 저에게 있어 공기나 물, 태양과도 같고 바람에 산들거리는 백양나무,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과 푸른 하늘 같습니다…

시인의 느낌을 남김없이 묘사하는 리 왜체슬라브의 서정시는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한 그의 시중에는 모국에 대한 사랑으로 무젖은 시도 있다. 왜체슬라브는 모국을 무척 사랑하며 조국이 분단된 것을 항상 가슴아파했다. 그는 1989년에 <레닌기치>신문사 대표단 단원으로 <평양>신문사의 초청을 받아 북한에 다녀온적이 있었다. 그는 돌아온후 기행문을 썼는데 거기에는 3.8선에 서 있으면서 그가 느꼈던 감정이 묘사되었다: <저 하늘에서 나는 새들은 남북을 자유롭게 나는데 왜 한 혈육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서로 만나지 못하는걸까?!>

오늘 리 왜체슬라브 보리소비치는 CIS나라 고려인들의 인정받는 시인이다. 그는 민족문화 재생에 반세기 이상을 이바지했다. 그의 시는 슬픔도 있고 기쁨도 있는 우리 민족의 생활의 진실한 년대기이다. 그 어느 힌때 유명한 러시아 시인이 말했듯이 그는 자기의 창작으로 <감정의 피로 남의 마음을 달래준다>.

그의 첫 시집 <시대의 꽃잎>이 15년전에 발행되었다. 이 시집의 서언에 아래와 같은 글줄이 있다: <리 왜체슬라브의 미묘한 시는 저녁노을이 깃들었을 때 외로움에 북받쳐 읽어야 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왜치지 못하듯이 그의 시도 소리를 내어 읽을 수 없다>. 2016년에 오래 기다렸던 <운명의 시선 >이라는 그의 새 시집 출판기념식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왜체슬라브 보리소비치는 우스베키스탄 지역을 담담하는 <레닌기치> 그후에는 <고려일보>주재기자로 20여년을 활동하면서 공화국의 여러 지역에 사는 수백명의 동포들에 대한 좋은 기사들을 많이 썼다. 그 시기에 동료들과 친구들 그리고 독자들이 그의 기사에 대해 찬사를 많이 하였고 신문에도 그에 대한 기사들이 실렸다. 리 왜체슬라브 보리소비치는 77세에도 일생을 살아오면서 그랬듯이 정직하고 예절바른 사람으로 남아있다. 그의 가족들에게 건강과 만복을 기원하는 바이다! 

<레닌기치>신문 전 주재기자들

김브루트 ,  리 블라지미르

아래에 리 왜체슬라브 시인의 시2 편을 소개한다.

고향땅에 대한 추억
누구에겐  에뎀, 그 누구에겐 엘라다
허나 나에겐 더 없이 그리운 땅
그 언젠가 아버지가 태여나 자란 곳
안개 자욱하고 공기 신선한 땅

갖난신고를 맛본
선조들의 피땀에 무젖은 땅
진달래의 나붓김에 박자맞춰
출렁이는 파도소리

그 곳에서 매미떼들이 맴맴
세기의 역사를 속삭이듯
기이한 폭포의 요란한 소리도
산악의 절경을 삼키지 못하리

누구에겐 에뎀, 그 누구에겐 엘라다
허나 나에겐 더 없이 그리운 고향땅이여

어린시절
갈대짚 흙벽 오두막집
그래도 제법 아늑했었지
포근한 엄마 등에 업혀
나날을 보내던 어린 내겐

강물위에 춤추는 
아름다운 칠색 무지개
사방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소리만 들리네

온 종일 그칠줄 모르는
할아버지의 타령소리
진득진득한 엿을 쥔 나의 
달콤한 어린 꿈을 달래주네 

사방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소리만 들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