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는 많을 수 없다

박 루슬란이 영화, 카자흐스탄 및 민족의 정체성과의 불가분한 연계에 대해 

 지난해 10월에 제 25차 부산국제영화축제에서 박 루슬란 감독의 영화 <셋>이  New Currents  (<새로운 흐름>) 콩쿨섹치야에서 가장 우수한 영화로 인정되었다. 소련에서 널리 알려졌던 식인종광 니꼴라이 쥬마갈리예브의 체포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카자흐스탄, 한국, 우스베키스탄이 합작한 것이다. 박 루슬란은 <고려일보>에 준 인터뷰에서 왜 이영화를 제작하기로 했는가에 대해 이야기 했으며 고려사람들에게 대한 영화를 제작하려는 아이디어가 실패한 것을 회상하고 았다.

-루슬란, 당신은 <하나안>영화와 <셋>영화로 관람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되어 이 두 영화간의 중단 기간이 7년이나 되었지요?

-일부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미소를 짓는다). 그 기간에 저에게는 각이한 프로젝트와 시나리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가지 원인에 의해 그것들이 논리적 결말을 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그것이 더 좋았을 수도 있습니다. 좋은 영화가 많을 수 없으니까요.

-현재 한국에서 거주하면서 사업하는거지요? 이것이 당신의 창작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체류하는 것이 어떤 가능성을줍니까?

-실지에 있어 나는 모든 출세과정을 한국 영화촬영장에서 경과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첫 전공은 한국어와 문학 어문학자입니다. 이것은 내가 <한국영화에만> 아니라 한국문화에도 적응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는 행운이 좋아 한국의 가장 우수한 영화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나는 동료들과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하기를 원한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당당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정한 경쟁 – 바로 이것이 내가 한국에서 얻은 가장 우수한 경험입니다.

-그런데 <셋>영화를 카자흐스탄에서 촬영하였지요. 바로 쥬마갈리예브가 당신의 관심을 이끌었는지 아니면  카자흐스탄에 대한 관심도 영화제작과 연관이 있었는지요?

-실지에 있어 카자흐스탄과 연관된 것이 많습니다. 아동시절을 우스토베시에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집에서 보냈거던요…현재 저에게는 카자흐스탄에 친척들과 친구들, 비즈니스-퍼트너들이 많습니다. 저에게 있는 시간의 3분의 1을 카자흐스탄에서 보내는 것이 확실합니다. 말이 났으니 말인데 나는 쥬마갈리예브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화 <셋>도 그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심리에 참가한 예심원들에게 관심이 더 갔습니다. 이 사연자체는 영화의 주제로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쥬마갈리예브가 현재 건강한 몸으로 살아 있다는 사실이 관심을 끌었지요. 이 사실이 내게 큰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 영화가 제작된 것입니다.

-영화 <셋>이 부산 국제영화축제의 New Currents Awards 섹치야 수상자로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가까운 시기에 새로운 창작에로 고무시켰는지요?

-물론 인기있는 그런 축제에서 수상자가 된 것이 아주 기뻤지요. 이것이 영화계에서 저에 대한 태도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한다면 그 상이 없이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열망과 아이디어가 저에게 많습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의 의사에 맡겨 두는 것이지요.

- 구 소련의 고려인들, 현재 한국에서 그들의 생활에 대한 영화를 촬영하려고 계획했던가요? 고려인들의 테마에 어느정도 관심이 있습니까? 

-물론 계획했었지요. 내가 타스켄트에서 태여나 자랐는데 그 구역에는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했어요. 제가 타스켄트에서 태여났지만 우리는 고려인들이 적게 사는  시구에서 자랐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반에 고려인 학생이 저 하나뿐이였습니다. 그후 내가 한국에 이주하자 첫 시기에 역시 <타인>으로 되었습니다. 때문에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항상 나의 관심사로 되었습니다. 내가 장편영화의 첫 시나리오를 쓰기전까지 말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고려사람들의 사연를 토대로 한 것입니다.  이 사연에 고무된 나는  고려인들이 누구이며 우리 선조들이 어떤 여려운 길을 걸어왔는가에 대해 온 세계에 이야기 할 대작 영화를 제작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원인은 예산의 10분의 1도 모으지 못해서 뿐만 아니라 지어 동포들 자체도 이런 프로젝트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한 친구가 …버리라는 충고를 주었습니다. 바로 그런 감정이 창작적 성장에 지장을 준다는 것입니다. 창작에는 제한이 없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나는 예산을 최대한 적게 들여 <하나안>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이것은 나의 민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고려사람들과도 아무런 연관이 없고요 오직 주인공이 고려인일 뿐입니다. 이 영화가 국제적인 성과가 있은 것이 저에게는 뜻밖이였습니다. 스위스에서 있은 영화축제에서 상영이 있은 후에 한 관람자가 저와 만나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유럽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어떤 새로운 것으로 놀라게  하기가 (더군다나 아시아나라들에서)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화가 얼마나 그 관람자의 마음에 들었든지 귀국하면 구소련 고려인들의 역사를 꼭 연구하기 시작하겠다고 확언했습니다. 때문에 저의 민족의 테마에 대해 말한다면 고려인들에 대한 기록영화가 이미 많이 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의 목적은 좋은 영화를 제작하려는 것입니다.  그 영화가 고려인들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타민족에게 대한 것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현재 어떤 영화를 창작하고 있습니까?

-스포츠에 대한 비극-환상영화 시나리오가 이미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카자흐스탄에서 벌어지는 사건입니다. 또 하나의 시나리오도 준비되어 있는데 그것은 한국의 제주도에서 있은 사회적 비극입니다.

-루슬란, 인터뷰에 응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에 창작적 성과를 기원합니다!  

김 콘스탄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