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쳐버린 주도권

CIS 나라들에서 거주하면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고려인들 – 고려사람들의 과학적 추론의 변형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형상적으로 말해서 현재 고려사람 역사 연구자들이 전해 준 계주봉이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것은 그 계주봉을 받아 쥘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 제국에로의 한인 이주를 연구한 19세기 러시아 학자들이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계속되었던 주도권을 놓쳐버렸다. 역설같게 들리지만 그 발기가 외국학자들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소련 시기에 고려사람들에 대한 연구사업이 금지되지 않았지만 따라서 특별히 장려되지도 않았다. 하긴 <흐루쇼브 시대의 온화>와 <계획에 잡힌 테마>가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는 했다. 때문에 김승화가 쓴 <소련고려인들의 역사에 대한 오체르크>, 김 이오시프의 <소련 고려극장>, 카자흐스탄과 중아시아 고려인들의 인종문화에 대한 로사 세.자를가싀노바, 윤드위가 웨.이오노바의 논설, 일리야 게,유가이의 소련고려인들의 인종언어특징, 정추의 가곡예술에 관한 논문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강제이주, 탄압, 노동부대에서의 복무 등 기타 많은 테마들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소련의 고문서들에는 상기 테마에 관한 문건들이 엄중히 보관되어 있었고 <공개금지>, <비밀>, <극비>라는 지시도 취소되지 않았다.
    고르바쵸브 개편시기에 소련인민이라는 공동명칭으로 단합된 인민이 자기의 인종적 다양성을 회상하고 느낄 수 있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도 상반년은 소련사람들의 인종정체성의 르네상스의 시기로 되었다. 고려인들도 다른 소수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민족전통을 되살리고 모국어를 적극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과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1980년도 후반기부터 시작하여 2000년도 말까지 고려사람들에게 대한 서적의 붐이 계속되었다. 모스크바로부터 시작하여 블라디보스톡에 이르기까지 고려인들의 현저한 수를 포함한 그루빠들이 거주하고 있는 도처에서 소책자와 책, 사진앨범과 고문서 자료선집, 과학컨퍼렌스 자료들과 명시선집들, 단편집들이 발행되었다. 기자들과 은퇴자들 그리고 역사가들부터 수학가에 이르기까지 여러 학자들을 비롯하여 모두가 다 썼다. 발행된 창작품의 다수를 애호가들의 사회작품으로 간주할 수 있다. 직업적 창작품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도 공통점이 많다. 책의 명칭이 그것을 말해 준다: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역사>, <우스베키스탄 공화국 고려인들>, <러시아 고려인들의 역사 오체르크>, <키르기스스탄 고려인들>, <벨로루시야  고려인들>. 게다가 저자들의 다수가 소련학자 세대 – 맑스-레닌주의 철학가들, 역사가들과 법률가들이였다. 그러나 그들의 창작품의 다수가 일반적으로 소련고려인들의 과거를 묘사했다. 1937년 강제이주에 각별한 주목이 돌려졌는데 날카로운 심리적 타격, 고통과 상실의 아픔이 강제이주와 연관되었다.
    작품통제 총국이 취소된후 인종르네상스와 언론자유의 물결속에서 때때로 나타나기 시작한 발행물들은 <고려사람>이란 명칭하에 소책자와 서적의 태산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 열망은 10여년이 지나 홍진이나 어린이의 다른 병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남은 인쇄물 태산에는 때때로 유익한 광층이 있고 지어는 <금광>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밀레니엄의 계선에서 구 소련 지역에서는 본질적 변동이 일어났고 학자들의 세대가 바뀌였으며 서방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영어를 배우고 과학적 분석의 새로운 리론과 방법을 알고 있는 학자세대가 나타났다. 러시아에서는 손 잔나, 옐레나 파따호바, 심 라리사, 올가 워로지세바, 김 예까쩨리나, 정 윅또르, 알렉산드르 뻬뜨로브 및 기타가 서방의 PhD에 해당한 학위를 받았다. 준박사 및 박사들인 부가이 니꼴라이, 박 보리스, 박 벨라, 리 블라지미르 (이우해), 유가이 게라심, 남 이리나 기타가 러시아 고려인들에 관한 연구사업을 계속하였다. 복 시 꼬우, 아나똘리 꾸신, 박승이, 진 율리야 기타 학자들이 진행한 사할린의고려인 아-디아포라에 관한 연구사업을 특별히 지적할 필요가 있다.
    아돌라트 라흐만꿀로바와 정 미하일이 우스베키스탄 고려인 디아스포라에 관한 학사논문을 통과시켰다. 철학박사 김 올리가, 역사학 박사 김 게론, 철학학사 유가이 일리야, 철학준박사 한 왈레리가 우스베키스탄 고려인들의 연구사업에 좋은 흔적을 남겼다. 그런데 우스베키스탄에는 고려인 디아스포라 연구 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가 한 명도 없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역사학 박사 강 게오르기, 정치학자 명 드미뜨리, 어문학자들인 류드밀라 사프로노바, 알루아 쩨미르불라트, 언어학자 박 넬리 그리고 근 20명의 고려인 디아스포라 연구자들이 여러 준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인이주 (세계의 범위에서) 역사에 관한 박사논문을 쓴 김 게르만은 <고려사람 연구학>의 테두리를 벗어났다.
    CIS의 기타 나라들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로루스에도 고려인 디아스포라 연구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에는 이해할만한 원인이 있다: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적은 수, 과학과 대학의 전문과의 분야로서 한국학의 미발달, 테마에 대한 수요가 없는 것이다.
    지난 20년 기간에 CIS의 그 어떤 나라 혹은 지역에 집중된 전문화된 연구사업이 나타났다. 그 외에 학자들은 인구학 과정, 민족간 결혼, 전통적인 생활풍습, CIS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언어인 고려말, 디아스포라 사회단체, 모국과의 연계, 고려사람들의 사고방식의 특성과 정체성에 각별한 주목을 돌렸다. 러시아어로 글을 쓰는 학자들과 고려사람을 연구하는 한국교수들의 그 어떤 체계적 협조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 야전연구 혹은 고려사람들의 연구에 대한 그란트를 받은 한국교수들은 프로젝트에 CIS 나라의 학자 1-2명을 넣는다. 그러나 현실적 협조는 없다. 학자마다가 자기가 맡은 분야에 대한 총화보고를 쓰거나 더 좋은 경우에는 책을 발행한다.
    최근 년간에 안내서들이 나타난 사실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이는 카자흐스탄, 우스베키스탄, 러시아, 키르기스스탄의 저명한 고려인들의 약전, 소련고려인들의 역사에 관한 고문서 문헌선집, CIS 고려인들의 백과사전과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백과사전, 의식진행, 전통과 풍습 준수에 관한 지도서, 한국요리 만드는 법에 대한 책, 민요집, 회상담과 자서전이다. 
    그러나 과학논설이 많이 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이나 미국에서 영어로 발행된, 고려사람들에게 대한 모노그래프가 하나도 없습니다. 한국에서 소련 및 구소련 고려인들에 대한 번역되어 출판되었는데 한국교수들의 창작물이 훨씬 더 많이 발행되었다. 한국 저자들에게는 큰 우월점이 있다 – 과학연구소들의 재정상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자유로운 아카데미야 연구사업, 야전연구사업을 할 수 있고 설비와 장비를 이용할 수 있으며 조수들과 기타 기술직원들을 채용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연구자료를 속히 발행할 수 있는 것도 한국동료들의 큰 우월한 점인데 이 면에서 그들은 중앙아시아나 러시아 학자들을 훨씬 앞서 나가고 있다. 책이나 프로젝트에 관한 보고서들을 한국어로 출판하기 때문에 한글을 모르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학자들이나 독자들이 그것을 읽어볼 수 없다. 
    최근에 보게 되는 또 한가지 비전형적인 사건은 저의 동료인 안드레이 란꼬브가 칭하듯이 <아가씨들>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지식을 얻으려고 외국으로 가서 타국언어를 배우고 출가하여 고려사람들에 대한 테마로 과학연구 사업에서 출세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우스베크>, <카자흐> 및 러시아 저자들에 소속시킬 수 있겠는가는 어려운 문제이다. 아마 이 면에서는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어디에 동일시하는가가 결정할 것이다. 
    끝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에는 <고려사람연구> 과학센터가 세개가 있다: 광주 전남대, 공주대, 충북대에서 연구하고 있다. 대학마다에 그 어떤 연구자료가 있지만 그것이 한국어로만 발행되고 러시아어로는 거의 번역되지 않는다. 이에다 모스크바, 타스켄트, 블라디보스톡, 알마티에서 준박사 논문을 통과시킨 10여명의 한국인들을 보충할 수 있다. 그들은 모두 다 러시아어로 회화를 하며 최고 자격 심사위원회 (국가 자격 심사위원회) 의 요구에 따라 2-3개의 논설을 러시아어로 발행되는 잡지에 발표하며 한국에 돌아와서는 모국어로 자기의 노작을 써서 발행한다. 
    CIS 나라들에서는 고려사람을 연구하는 사업이 어떻게 융자되고 있는가? 그 어떤 국가기관의 지원에 대해서는 말할 여지도 못된다. 드문 드문 디아스포라 협회나 단체, 스폰서들이 지원을 한다. 이것은 주로 책 발행이나 주년일과 연관된 컨퍼렌서를 지원하는 것이였다. CIS 나라 연구자들은 아카데미나 한국학 재단에서 보통 책 출판이나 한국에로 과학연수를 위해 개별 그란트를 받을 수 있다. 아주 드물게는 그루빠 프로젝트에 대한 그란트를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은 한국문화 모국어, K-Pop 연구와 연관된 것이다.
    오늘에 이르러 러시아어로 고려사람을 연구하는 사업이 깊은 약성을 띠고 있다. 문제는 깊은 연구를 요구하지 않는 일반적 사업이 진부해지고 책마다에 반복되는 부분들 지어는 페이지들이 반복되는 데에 있는 것이다. 좁은 전문분야를 깊이 연구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자금이 더 많이 필요하고 특별한 능력과 이 사업에 익숙해야 한다. 현 단계에서는 한가지 언어만이 아니라 몇가지 외국어 우선 한국어소유가 적절해 졌다. 시대의 요구에 불적합한 것은 고려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침체상태에 몰아넣었다. 하긴 더 넓은 범위에서 본다면 사회인문학의 원대한 위기와 부닥치게 된 것이다.
    실지에 있어 한국인들이 완전히 잡아 쥔 고려사람들에게 대한 또 하나의 새 테마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모국에 있는 8만명 (이미 이수자에 영이 다섯개가 된다는 말이 돌고 있다!)의 고려인들에 대한 것이다. 구소련 공간의 고려인들의 결말의 fenomen이다: 그의 원인, 이주민들의 성별, 년령, 직업, 적응문제, 안정한 일자리가 없는것, 비좁은 방에서 거주조건, 다운그레이드와 차별대우 느낌으로 하여 얻는 심리적 타격, 습관되지 않은 생활양식으로 인한 스트레스, 힘든 노동조건 등 이 모든 것이 객관적 분석의 대상으로 되어야 한다. 한국교수들의 힘으로만은 이 과업을 해결할 수 없다. 하다 못해 이 segment에서라도 평등한 파트너 관계와 협력을 조성할수 있는지?... 의심이 든다.
    오늘현재 합동연구 프로젝트 실시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 객관적 및 주관적 원인을 비롯하여 원인이 여러가지이다. 때문에 ….사회인문학 연구가 순전히 개별적 성격을 띠었디는 테제에 동의하게 된다. 게다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고려인들 사이에서 연구의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왜냐 하면 순전한 개인적 과학의 우선권에 대한 목소리가 들리며 이미 <말뚝을 박아놓은>테마를 건드리며 그것을 개재하면서 원천을 지적하지 않는다는 기소가 울려나고 있다. 이에 있어 러시아어로 쓰는 고려사람 연구자들은 동료들의 창작품에 대한 반향을 쓰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연구하는 문제를 건설적으로 토의하려고 하지 않으며 상호 무시하는 것이 보인다. 놓친 발기가 러시아어로 쓰는 고려사람 연구자들에게로 되돌아오기를 기대하여 보는바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 또는 집단적 노력을 최대한 경주해야 할 것이다.

    김 게르만 – 역사학 박사, 알-파라비 명칭 카자흐국립대
    한국학 센터 소장, 교도 종합대학 동남아시아 연구센터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