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TV프로그램

우스베크 TV방송국에서 방송되는 고려인들을위한  프로그램 <친선>이 지난 해에 31주년을 맞이했다. 첫 2년을 제외하고는 거의 30년을 박 리따 이세꼬브나가 지도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우스베키스탄의 고려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 이 오랜 기간을 리따 이세꼬브나는 촬영기사 아심 사이도브와 함께 일해 온다. 최근 년간에 그들의 합동 창작이 범위가 더 넓고 다양해 졌다. 우스베키스탄의 고려인들에 대한 첫 예술영화가 제작되었고 모국어 소유를 비롯하여 각종 테마의 비데오영화도 촬영되었다. 리따 이세꼬브나와 그의 창작그루빠에 진심으로 성과를 기원한다!

-저의 친 고모 리 뉴라는 80세가 좀 남짓하게 생존하셨습니다. 그중 반 생은 벡쩨미르에서 살았는데 치르치크강 하류의 갈대진펄밭에 있은 이주민 꼴호스에서 1950년에 이주하여 왔습니다. 여섯명의 자식들중에서 고모가 막내였습니다. 쁘리모리예 변강 스꼬똡까구역에서 1930년에 태여난 고모는 벡쩨미르에 이주할 무렵에 일곱살이였습니다. 
우리가 존대하여 뉴라 할머니라고 부른 고모는 늙으실 때까지 우리와 극장,박물관, 영화관을 다녔는데 무엇보다도 한국시리즈를 좋아했습니다. 조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는 연해주에서 고려인들의 이주전 생활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고모네 집에서 처음으로 한복을 보았는데 명절이면 꼭 한복을 입었습니다. 고모네 집에서 큰 북조선 부채, 무늬가 있는 젓가락, 참대로 엮은 모자 그리고 서양물건을 보기에 습관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신기한 기타 많은 물건들을 보았습니다.

90년대 초에 우리가 벡쩨미르의 고모네 집으로 갔을 때 고모가 우리를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손님후대하는 고모의 원칙에 어긋났습니다. 우리는 마당에 있는 임시가옥에서 고모를 찾아보았습니다. 방안에는 낡은 작은 텔레비젼이 있었는데 고모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이 어린 얼굴로 <청춘>무용단의 공연을 보고 있었습니다. <친선>고려방송이 계속되는 20분간은 고모에게 주위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후에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민족문화에 대한 향수에 젖은 고모는 방송을 보면서 함께 춤추고 노래부르고 웃고 울기도 했습니다. 그 때부터 우리도 뜻밖에 뉴라할머니에 의해 고려말 방송을 정기적으로 보기 시작했으며 민족의 뿌리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 리따 이세꼬브나가 이야기 한다. 

<친선>고려방송은 우스베키스탄 TV방송국에서 1990년 3월부터 방송하기 시작했다. 존재 기간에 방송의 체널, 방송 주기, 연출가, 방송원들이 여러번 바뀌었다. 러시아어로 방송되기에 고려인들뿐만 아니라 공화국에 사는 다른 민족과 소수민족들도 보았다. 최근 20년동안에 공화국에서 상주하는 한국인들에 의해 시청자들의 수가 늘어갔다. 처음에는 손 인나가 방송을 했고 다음 박 리따가 그를 대신했다. 박 리따는 이미 20여년을 우스베키스탄 고려인들의 다양한 생활, 그들의 숙망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는 방송원으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재능있는 연출가이며 시나리오도 쓴다. 지난 기간에 수십개의 기록영화를 제작했는데 그중 많은 것이 국제콩쿨 상을 받았다. 

박 리따 이세꼬브나는 1960년에 구리예브 ( 현재 아틔라우) 시에서 태여났다. 네살 때에 부모와 함께 우스베키스탄으로 이주했다. 타스켄트국립대학 기자학부를 통신으로 졸업했다. 18세가 되였을 때 우스베크 TV방송국에 타자수로 취직했다. 90년대에 그에게 <친선>방송을 맡겼다. 그 때부터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이 직책에서 근무하고 있다. 

1955년에 박 리따가 국제 TV방송 프로그램 콩쿨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한국에 갔었다. 일년 후에 그의 영화 <금년도 인물>이 KBS 방송이 제정한 <서울 프라이즈>콩쿨에서 셋째 자리를 차지했다. 이 영화는 김 왜체슬라브 비즈니스맨에 대한 것이였다. 1977년에 역시 같은 콩쿨에서 그가 제작한 영화 <우리가 누구인가?>가 역세 셋째 자리를 차지했다. 박 리따는 한 인터뷰에서 <친선>방송에 대해, 자기의 창작 계획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각자에게는 그의 생활에 대한 위대한 책이  숨쉬고 있습다. 그것은 유일무이한 책입니다. <친선>프로그램 직원들은  고려인의 어제, 오늘, 내일을 들여다 보면서 주인공의 초상화를 그리려고 노력합니다. <친선>은 고려인 소수민족의 생활에 있는 새 소식으로 방송을 시작합니다. 이는 보통 주우스베키스탄 한국대사관, 타스켄트에 있는 한국교육원, 한국국제협조 사무소와 우리 문화센터들이 진행하는 보통 행사들입니다. 국가경절과 민족명절에도 큰 주목을 돌립니다. 프로그램은 우스베키스탄의 고려인들이 음력설, 나우릐스, 독립절, 추석, 단오를  어떻게 맞이하는가에 대해, 우스베키스탄에서 한국 문화의 날 범위내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대해 정기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가장 보급된 쟝르인 인터뷰가 없는 방송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동시대인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특이한 것이 없는것 같지만 운명마다가 흥미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주인공이 보통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방송을 제작하는 과정에  몇 명의 다른 사람의 생을 살 가능성을 얻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촬영을 하고 운명에 파고 들어가게 되는 사람마다가 개성입니다. 때문에 방송이 시청자들의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시청자들과의 상봉과정에 <어디서 저런 주인공을 찾아냈나요?>라는 질문을 들을 때가 기쁩니다.

저명한 사람들이 각이한 시기에 <친선>방송의 주인공들로 되었는바 그들중에는 이름있는 정치가, 작가, 음악가들과 스포츠맨들, 화가들과 배우들, 학자들과 기타 직업 대표들이 있었다.
 

리 블라지미르의 글과 사진